목록전체 글 (238)
오늘을 가장 즐겁게 사는법
내가 처음 질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된것은 2003년의 일이다. 내가 좋아했던 한 친구는 내가 아닌 다른 친구를 좋아하고 있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향해있을때는 그 어떤 다른 유혹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음을 알고있기에 나의 마음은 그 친구에 충분히 전해 질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질투'하는 마음과 '질투'라는 단어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질투'라는 말을 되뇌이다 문득 떠오른 말이 있었다.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그분께로 향하지 않은 내 마음도 그분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게했고 또 그분의 마음을 이토록 아프게하고있다는 것을 알았다. 근래 몇번의 인연이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 인간의 사랑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그 무엇이 되었든 내게서 하나님의 평안보다 귀한것은 없습니다. 내 마음을 흔드는 무엇이 있어도 어떤일이 있어도 내 마음의 주인인 예수님보다 먼저 되는것은 없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죄인에게도 빛을 비춰주시는 주님. 그 밝은 빛이 비춰지면 보이지 않던 하염 없는 먼지들도 그 존재를 드러냅니다. 내 안에도 빛이 없으면 깨달을 수 없는 그것들이 이렇게 많이 있겠죠. 예수님 목 마릅니다. 예수님 목 마릅니다. 목이 마르다고 해서 독주를 마시겠습니까. 오늘도 비춰주신 그 은혜로 내 영혼을 살게 해주세요.
삶은 사랑을 배워가는 것 구원을 받고 성화의 길을 걷는 것이 성도의 삶이라고 배웠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것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그래서 삶은 사랑을 배워가는 것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하나님을 닮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어릴적에는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받는 사랑을 배웠습니다. 성인이 되어가며 친구를 통해 또다른 사랑을 배웠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그 보다 주는 사랑에 대해서 더 많이 배운것 같습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조건이 없는 것이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내가 조건없이 하나님께 사랑 받는것을 보면요. 그래서 저도 조건 없는 사랑을 하고싶습니다. 다만 그 대상의 선택을 하나..
예배하는 하나님의 나라, 관계의 회복 늘 열정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미지근 한것을 경계하며 살았습니다. 15년간 변함없는 좌우명은 '반성'입니다. 개가토한것을 다시먹는것 같은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늘 잠들수 없는 소망하는 것이 있었고 그럴때마다 모든 대가를 치뤄가며 수많은 가치관의 변화를 감당해야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소심하고 내성적이던 내가 하나님의 꿈과 비젼을 본 이후 가능하게 된 일이었습니다. 꿈은 혼자서 이룰 수 없는 것들이었기에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것을 위해 계획하는 일을 계속해왔고 많은 사람들의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하나님이 좋고 사람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한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세상의 꿈이란, 사람들의 관계란 허무하고 상처투..
안녕하세요. 오늘도 답장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내주신 글 잘 보았습니다. 일본에서의 재미있었던 이야기일까요. 누나의 글을 보니 일본에 있던 일 중 하나가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정확히 1년간 일본에 있는 동안 두 가지의 특별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 중 두 번째의 만남입니다. 나이는 저와 같았고 국적은 일본이었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기적이었습니다. 한 달간의 꼬이고 꼬이는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상황이 결국 그녀를 만나게 해주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 특별한 만남은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처음 만난 이후 한 달간 대부분의 시간을 그녀와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만남, 특별한 관계는 뭇 연인들이 겪어야 할 몇 년간의 수고를 내팽개쳐 버린 우리에게 혹독한 이별..
하나님과 친밀한 교재를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하나님을 느끼고 알게됨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된것과 같은 것이자 모든것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또한 가지게 되었으며 기적이 더 이상 특별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지속하고 싶었고 더 나아가 발전하고 싶었다. 하나님의 임재와 기적이 떠나지 않는 삶을 원했고 그것을 나는 "칼날 위를 걷는 삶"이라고 표현하며 기도 했다. 하나님의 임재의 삶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의 임재를 떠난 삶은 칼날에 잘려 나간 죽음과도 같은 것이라 여겼다. 하나님의 방향을 알지 못할 때의 나는 어둡고 깊은 물속에 빠져 어디가 위고 아래인지 방향을 구분할 수 없는 숨막히는 상황에 처한것..